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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싶지 않은 궁금함으로 본질을 흐리는 일그러진 관심 '블레임 룩'

by 감성총각 2024.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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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희진 사건보다 더 유명해진 민희진의 옷

 

여러분은 블레임 룩이라는 말을 알고 계신가요? 오늘은 알고 싶지 않은 궁금함으로 본질을 흐리는 일그러진 관심 '블레임 룩'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블레임 룩의 한 가지 예시로 최근 사회적으로 굉장히 뜨겁게 불타올랐던 사건이 있었죠. 바로 하이브와 어도어 민희진 대표의 분쟁인데요.

 

그런데 뜻밖에도 민희진 대표가 기자회견에서 착용했던 맨투맨 티셔츠와 모자가 품절되며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거나 비난받는 대상의 소지품이나 의상이 갑자기 대중의 관심과 인기를 끌게 되는 현상을 '블레임룩'이라고 부르는데요.

 

블레임 룩이라는 단어는 대한민국의 시사 관련 신조어 중 하나로,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거나 비난받는 대상의 패션이나 소지품이나 의상이 갑자기 대중의 관심과 인기를 끌게 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물론 대한민국 언론에서 만든 표현이므로 영어권에서는 의미가 통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비슷한 말로는 칼리굴라 효과(Caligula effect)와 연관성이 있습니다.

 

블레임 룩 현상을 연출한 드라마 <퀸 메이커>

 

화려함이 아닌 눈가리개

비난한다는 의미의 ‘블레임(Blame)’과 옷, 액세서리 등 총체적인 모습을 뜻하는 ‘룩(Look)’이 합쳐진 ‘블레임 룩(Blame Look)은 위의 사례와 같이 여론의 비난을 받는 인물의 패션에 집중하는 현상을 일컫는 단어입니다. 단어만 듣게 되면 마치 신조어인 것만 같지만, 이러한 현상 자체는 우리에게 굉장히 익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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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임룩은 앞서 1999년 탈옥수 신창원의 무지개 티셔츠, 2016년 국정농단 사건으로 검찰에 출석했던 최순실의 프라다브랜드 신발, 2017년 국정농단 당시 체포되었던 정유라의 패딩, 최근 마약 혐의에서 벗어난 지드래곤의 안경까지. 부정적인 사건에 연루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특정 브랜드와 아이템 앞에 이름이 수식어로 붙을 정도죠.

 

아이러니하게도 블레임룩으로 인해 긍정적인 영향을 받는 브랜드들도 있는데요. 신창원이 입었던 티셔츠는 이탈리아 미쏘니라는 브랜드의 가품으로 밝혀졌지만, 그 디자인이 인기를 끌면서 미쏘니 브랜드의 판매가 급증했다고 합니다. 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국정농단 청문회장에서 사용했던 립밤도 화제가 되면서 완판 되기도 했었습니다.

 

조현아 사건에서 관심받은 건 그녀의 머플러

 

또한 몇몇은 이런 반응을 의식하는 듯 블레임 룩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은 검찰 출석 시 평소와는 다르게 수수한 모습으로 등장했습니다. 언론에서는 ‘반성 패션’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으나, 인터넷에선 머플러가 고가의 로로 피아나제품이라는 의혹이 제기되며 ‘가짜 반성’이라는 여론의 반발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당시 조현아 전 부사장의 갑질과 후속 대처보다도 그녀가 입은 브랜드와 가격이 더 주목받은 것은 가슴 아픈 사실이죠.

또 다른 인물로는 청부 폭행 혐의로 경찰과 법원에 출석했던 래퍼 카디 비로 언뜻 보면 공연 의상으로 착각할 정도로 화려한 의상을 착용했습니다. 러플과 깃털이 수없이 놓아진 코트와 모자를 쓰거나, 메릴린 먼로가 연상되는 금발 가발과 긴 트임이 돋보이는 스커트를 착용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밍크코트와 큰 선글라스를 착용한 그녀의 모습은 오히려 위화감을 조성하며, 죄를 지은 당사자가 아닌 당당한 마피아를 보는 듯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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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패션은 SNS에서 빠르게 재생산되었으며, 오히려 대중의 지지를 받기도 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재판을 통해 그녀는 언제나 사치스럽고 화려한 자신의 이미지를 공고히 할 수 있는 사회적 관심을 끌어냈습니다. 마치 본 포스팅과 같이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 사건의 내용보다 그녀가 자신의 죄를 마주한 태도, 패션에 주목하는 시선이 더 많을지 모릅니다.

 

이러한 실태는 국내에서 아직 가볍게 여겨지지만, 해외에는 법정 출두를 위해 별도의 스타일리스트를 동원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합니다. 블레임 룩 현상은 패션에 대한 단순한 관심을 넘어 정작 중요한 사회적 문제들을 압도하고, 화려한 외적인 면만을 주목시키고 있습니다.

 

해외 유명인사들의 블레임 룩

 

열성과 비난 그리고 잘못된 관심

이처럼 대중이 특히나 부정적인 사건에 연루된 이들의 패션에 관심 두고 또 블레임룩을 따라 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무엇일까요?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는 블레임룩에 대해 '사회에 불만을 가지거나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이들을 동경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가장 큰 차이점은 의도하지 않은 자연스러움에 있습니다. 판매를 위해 만들어진 캠페인 혹은 인스타그램에서 항상 볼 수 있는 인플루언서의 광고와는 다르게 블레임 룩은 특성상 일상에도 입고 있다는 확신을 줍니다.

 

제품에 대한 노출이 의도되지 않았기에 제품에 대한 신뢰도가 상대적으로 상승하게 되는 것이죠. 또한 블레임 룩에 대한 연구에서 대중은 긍정적인 정보보다도 부정적인 정보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이로 인해 블레임 룩과 같이 부정적인 사건에 연루되어 있는 인물을 보았을 때, 대중은 더 기민하게 반응한다고 합니다.

 


올해 경찰 출석 당시 지드래곤이 착용한 자크 마리마지의 프렌치 스퀘어 타입 안경은 평소 보기 어려운 그의 자연스러움을 더욱 부각했습니다. 그의 무혐의 처분과 별개로 자크 마리마지 안경은 각종 커뮤니티에서 회자되었고, 해당 제품의 매진은 블레임 룩에 대한 소비자의 태도를 방증하고 있습니다.

 

물론 일반인도 존재하지만 대부분의 관심이 유명인에게 치중된 만큼, 이들에 대한 인식 역시 중요합니다. 한국 소비자원 보고서 <블레임 룩: 근거이론방법을 통한 소비자 반응의 탐색적 접근>에 따르면, 대중은 사회적 지위가 높은 재벌, 정치권 권력을 가진 유명인이 무엇보다도 좋은 물건을 선택할 것이라는 인식이 있습니다. 이는 자연스럽게 그들의 제품이 높은 품질이 보장되었다는 생각으로 이어지게 되죠. 특히 외형이 강조되는 패션 아이템은 블레임 룩에 의한 마케팅의 영향 아래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프라다 브랜드 이미지에 타격을 주었던 최순실 사건

 

브랜드의 훼손

그러나 블레임 룩에 대한 대중의 높은 관심이 꼭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브랜드 입장에서는 블레임룩으로 당사의 제품이 노출되는 것이 달갑지만은 않은 일이죠. 물론 인기를 끄는 제품들도 존재하지만, 단기 판매에 그치는 경우가 많고, 장기적으로는 매출 하락과 브랜드 이미지에 타격이 오는 등의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예로 2016년 검찰에 출석한 최순실의 떨어진 프라다 신발은 여러 패러디를 만들어 내며 한 번쯤은 들어봤을 큰 이슈가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프라다에 대한 국내 관심도는 높아졌지만, 2016년 매출은 오히려 하락했죠. 또 다른 예로는 아동 성범죄로 국민들의 공분을 산 조두순이 입은 아웃도어 브랜드의 패딩도 화제가 된 적이 있는데요.

 

해당 브랜드는 즉각 브랜드 이미지 훼손을 우려하여 브랜드 로고를 잘라내거나 모자이크를 해달라는 자료까지 배포했을 정도라고 하죠. 이처럼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사건과 연루된 경우, 브랜드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불가피한 매출 하락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존재합니다.

 

기네스 팰트로의 블레임 룩

 

설득을 위한 새로운 수단으로

그리고 최근에는 블레임 룩의 새로운 활용법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비난을 피하거나, 마케팅적 수단의 용도에 그치는 것에서 나아가 자신을 설득할 수 있는 수단이 되기도 하는데요. 실리콘 밸리 최대 사기극을 벌인 ‘엘리자베스 홈즈(Elizabeth Holmes)’는 평소 스티브 잡스를 연상시키는 검은 터틀넥으로 카리스마와 냉철한 이미지를 구축했습니다. 그러나, 법정에서 그녀의 모습은 마치 다른 사람의 모습 같았습니다. 그녀는 회색 캐주얼 슈트와 함께 파란색 셔츠를 입으며 평범한 회사원 혹은 부드러운 성격을 가진 인물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는데요.

 

이와 같은 예로 마크 제이콥스의 옷을 훔친 혐의로 재판에 선 ‘위노나 라이더(Winnona Ryder)’는 오히려 마크 제이콥스의 옷을 착용하거나, 밝은 색상의 긴 스커트와 코트를 입었습니다. 그녀는 재판장에서 마치 보수적이고 세련된 자신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듯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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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스키장 뺑소니 사건에 휘말렸던 ‘기네스 펠트로(Gwyneth Paltrow)’는 법정에서 자신만의 블레임 룩을 선보이며 2023년 올드머니 트렌드의 선두 주자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녀는 더 로우부터 프라다 등 젊은 세대도 설득할 수 있는 세련된 아웃핏을 선보였습니다. 그녀는 크림과 올리브처럼 다양한 컬러와 카디건과 투피스 정장, 스커트 등 수많은 배리에이션을 완벽하게 소화하며 기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녀의 목적은 패셔니스타로 주목받거나 자신의 사건이 잊히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녀의 재판은 배심원제로 진행되었으며, 배심원단은 스키장 사고가 일어나고 재판이 열리던 유타주에서 선출되었습니다. 뉴욕 타임스가 진행한 인터뷰에 따르면 그녀의 패션은 마치 유타주의 메인스트리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패션이었다고 합니다. 과한 로고를 피하고, 차분하지만 생동감 있는 아웃핏을 선보인 기네스 펠트로는 자신이 유타의 외부인이 아님을 표현했고, 신뢰감을 더해 배심원단의 공감을 끌어냈습니다.

 

런던 패션 대학교수 ‘수잔나 코드너(Susanna Cordner)’는 패션을 통해 새로운 페르소나를 선보이는 블레임 룩은 어쩌면 증거 그 이상의 역할을 해내기도 한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누구나 법정에 소환될 때 옷차림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지만, 결국 그것이 판결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은 몹시 아이러니하게 여겨지는데요. 이렇듯 우리도 어느새 철저한 블레임 룩의 설득에 넘어가고 있을지 모릅니다.

 

혐의가 없음에도 조사를 받았고 그보다 주목받은 그의 안경

 

 

본질은 증발하고, 패션만 남는다. 그들이 어떤 옷을 입는지, 어떤 브랜드를 구매했는지도 물론 중요하고, 충분히 흥미롭습니다. 아웃핏이 한 사람의 성격과 취향을 반영하고 때론 패션으로 정치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만큼, 주목해 볼 법한 것은 사실이죠. 그러나 앞서 말했듯 블레임 룩 현상을 영리하게 이용한 사례는 무척 많았고, 우리가 구분할 수도 없습니다.

 

화려한 패션 뒤 감춰진 진실과 의도를 파악하지 않고 오로지 룩에만 주목한다면, 우리는 그보다 중요한 사회적 문제와 가치를 놓칠 수 있습니다. 이 글을 읽는 우리 또한 이러한 대중 심리에서 자유로울 순 없습니다. 이 시대의 진정으로 덕목은 보이는 것 이면의 본질을 바라보는 능력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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