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한국 연예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K팝 스타들의 성 추문 사건, 일명 '버닝썬 게이트' 다큐멘터리가 19일 유튜브에 공개됐습니다. 해당 동영상은 21일 낮 기준 조회수 340만 회가 넘으며 댓글 2만 1천여 개가 달렸습니다.
해당 영상을 본 시청자들은 주된 반응은 분노였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성폭력, 불법 촬영물 유포, 경찰 유착 등 사건의 심각성에 견줘 가해자들의 형량이 너무 가벼웠다는 점입니다. 가해자들은 벌써 출소해 잘살고 있는데 해당다큐에 등장한 피해자의 상처는 아물지 않았으니까요.
영국 공영 방송 BBC는 탐사보도팀 'BBC Eye'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버닝썬: K팝 스타들의 비밀 대화방을 폭로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공개했습니다. 해당 다큐멘터리에는 지난 2019년 국내외를 떠들썩하게 했던 K팝 스타들의 성 추문 사건, ‘버닝썬 게이트’를 취재한 박효실, 강경윤 기자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박효실 기자는 정준영의 불법촬영 혐의를 처음 보도했으며, 강경윤 기자는 배턴을 넘겨받아 ‘버닝썬’에 얽힌 인물과 사건을 깊이 파고들었죠. 이 다큐멘터리는 버닝썬 사건 자체를 되돌아보는 것에서 나아가, 기자들이 취재 과정과 그 이후에 마주한 성폭력의 현실까지 짚어봅니다.
"살아 있는 여잘 보내줘"... 추악하고 끔찍한 비밀 대화방
이 사건은 2016년 정준영이 불법 촬영물 유포 혐의로 고소당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다큐에 따르면 정준영은 경찰 출석 전 휴대폰을 사설 포렌식 업체에 맡겼고, 정준영의 변호사는 이 포렌식 업체와 피해자를 압박했고 경찰은 수사를 흐지부지 종결했습니다. 그러나 정준영의 휴대폰을 포렌식 한 복사본이 존재했고, 3년 뒤 누군가가 이 복사본을 언론에 제보하며 그들의 민낯이 세상에 까발려졌습니다.
이때 강경윤 SBS 기자가 제보받은 카카오톡 채팅은 정준영 씨가 2015년부터 2016년에 걸쳐서 나눴던 내용입니다. 다큐에서는 해당카카오톡 단톡방에서 공유된 영상 일부가 처음으로 공개됐습니다. 영상에서 승리는 힘겨워하는 여성을 윽박지르며 끌고 가는 등 여성을 “장난감” 취급했던 실체가 명확하게 확인됐습니다. 또한 채팅방에는 정 씨가 여성에게 술을 권하고 성추행하는 장면이 영상으로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단톡방에는 정 씨와 친구들이 벌인 성범죄 모의도 있었습니다. 특히 "살아 있는 여잘 보내줘"라는 말은 그동안 이들이 의식을 잃은 여성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질렀음을 암시합니다. 단톡방에는 피해자 모르게 촬영된 성관계 영상도 올라와 있었습니다.
이 사건을 취재한 에스비에스(SBS)연예뉴스 강경윤 기자는 다큐에서 “돈, 권력, 여성, 섹스… 엔터테인먼트에서 일어나는 일이 우리 사회 축소판 같았다. 이 분야(연예)에서 일하면 할수록 우리 사회 밑바닥 본모습을 보게 되는 것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버닝썬에 근무했던 직원들은 "버닝썬에서 XX을 먹고 정신이 나간 여자들을 거의 매일 봤다"라고 털어놓았습니다. 다큐에서 공개된 CCTV 화면에선 한 여성이 머리채를 잡혀 끌려가면서 도움을 요청하는 모습이 나왔지만, 직원들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다큐는 가드가 문을 막고 서 있던 VIP룸에서 불법 촬영이 이루어졌고, 영상은 온라인을 통해 유포됐다고 밝혔습니다.
경찰의 부실 수사는 유착관계 때문?
다큐는 버닝썬 게이트 관련 경찰의 부실 수사도 중점적으로 다룹니다. 2016년 '경미'(가명)라는 여성은 정 씨가 성관계 영상을 유포할 것을 두려워해 그를 고소합니다. 그런데 경찰은 정 씨가 핵심 증거인 휴대폰을 사설 포렌식 업체에 맡겼다고 하자 직접 조사하는 대신 보고서를 요청합니다. 정 씨의 변호사는 포렌식 업체에 전화를 걸어 "경찰은 별거 아닌 고소 사건이라 차라리 복원 불가를 원한다"라고 말합니다.
경미 씨는 증거가 없으면 무고죄로 더 크게 처벌받을 수 있다는 변호사의 말에 고소를 취하하고, 정 씨는 이틀 뒤에 기자회견에서 "둘 사이의 장난이었다. 나만 떳떳하면 넘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라는 말을 하고 빠져나갑니다. 경찰이 직접 포렌식을 하지 않아 고소취하됐던 사건의 핵심 증거는 누군가에 의해 제보됐고, 파일에는 정 씨와 그 친구들의 범죄 사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버닝썬 게이트를 취재한 기자들은 정씨 사건 이외에도 FT아일랜드 출신 가수 최종훈 씨가 음주운전으로 적발됐지만 무혐의로 풀려나거나 버닝썬 클럽 관계자들이 경찰에게 현금을 건네는 사례 등을 언급하며 경찰과의 유착관계를 의심합니다. 강경윤 기자는 "이들 주변에 굉장히 힘 있는 경찰이 있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라고 밝혔습니다.
다큐는 "승리가 경찰과 투자자의 인맥을 이용해 고수익을 내는 강남 클럽 사업의 주요 인사가 됐다"며 "'경찰청장'이라 불리는 사람이 그들의 사업을 보호해주고 있던 것으로 확인됐다"라고 밝혔습니다. 2019년 버닝썬을 찾은 한 고객이 클럽 직원들에게 폭행을 당하는 장면이 고스란히 CCTV 영상에 담겼습니다. 그러나 경찰은 때린 직원이 아니라 오히려 맞은 고객을 체포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승리는 경찰 조사를 받고 버닝썬은 문을 닫습니다. 경찰청장으로 불리던 윤아무개 총경은 구속영장이 청구됐지만 1심 판결에서 무죄를 받고 풀려납니다.
진실을 폭로한 여성들과 결정적 도움준 피해자 구하라
'BBC뉴스 코리아'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버닝썬 다큐에는 'K팝 스타들의 비밀 대화방을 폭로한 여성들의 이야기'라는 부제가 달려있습니다. 다큐에는 성범죄 피해자와 가수 구하라 씨, 박효실 <스포츠서울> 기자와 강경윤 SBS 기자가 등장합니다.
박 기자와 강 기자가 주요 인물이지만, 이들 못지않게 경찰과의 유착 관계 의혹을 사실로 확인시켜 승리 일행과 유착관계를 맺은 이른바 ‘경찰청장’이 누구인지 밝히는 데 도움을 준 사람이 지금은 세상을 떠난 가수 구하라라는 사실도 공개됐습니다.
해당 다큐에서 가수 승리(본명 김승현)·정준영·최종훈 등이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서 나눈 대화 내용을 처음 폭로한 강 기자는 “(‘경찰 유착 의혹’과 관련해) 도대체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 나오는 경찰이라는 사람이 누군지가 가장 풀리지 않는 숙제였는데 구 씨라는 존재가 등장해 그 물꼬를 터 줬다”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강 기자는 “구 씨에게서 ‘기자님, 저 하라예요’라고 연락이 왔다”며 “구 씨는 ‘정말 도와드리고 싶다’고 했다. 저는 솔직하게 (그들이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서 언급한) 경찰의 존재를 알고 싶은데, 알 방법이 없다고 얘기했더니 구 씨가 최종훈 씨에게 전화를 걸어 대신 물어봐 줬다”라고 말했습니다. 구 씨는 강 기자에게 “그들이 휴대전화를 할 때 본 적이 있는데 거기(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 진짜 이상한 게 많다. 강 기자가 이야기한 게 맞다”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구 씨는 최 씨와 연습생 시절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던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최 씨의 입에서 그들의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서 ‘경찰청장’으로 불린 윤규근 총경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게 설득한 게 구 씨였습니다. 구 씨의 오빠 구호인 씨는 다큐멘터리에서 “동생이 ‘강 기자에게 네가 알고 있는 것들을 말하라’고 (최 씨를) 설득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동생이 종훈이와 스피커폰으로 통화할 때 옆에서 들었는데 ‘종훈아 내가 도와줄게, 네가 알고 있는 걸 그대로 강 기자에게 이야기해’라고 하더라”라고 전했습니다.
강 기자는 “(당시 최 씨는) ‘되게 높은 사람이랑 아는 것 같았다. 골프를 한번 (함께) 쳤는데 얼핏 듣기로는 청와대에 지금 있다고 했다. 과거에 경찰 경력이 있다고 했다’고 말했다”며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서 언급된) ‘경찰청장’이라는 인물이 허구의 인물이 아니라 실제로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최종훈이 입밖에 꺼낼 수 있게 (구 씨가) 도와준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구 씨가 강 기자를 도운 이유는 구 씨도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강 기자는 “내게 이야기했을 때 ‘저도 ‘리벤지 포르노’(디지털 성범죄) 피해자잖아요’라고 말했다”라고 회상했습니다. 구 씨는 2018년 10월 불법촬영 동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한 혐의로 전 남자친구 최아무개씨를 경찰에 고소한 바 있습니다. 그 뒤 2020년 10월 대법원은 최 씨에게 징역 1년을 확정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구 씨는 2019년 11월 24일 세상을 떠난 뒤였습니다.
다큐멘터리에서 강 기자는 버닝썬 사건의 실마리를 찾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구 씨에게 “구하라는 용감한 여성이고, 멋있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내자 구 씨가 “괜찮다. 열심히 살겠다”라고 답했다고 전하기도 했습니다.
젠더 이슈가 아닌 '범죄'
다큐 '버닝썬:K팝 스타들의 비밀 대화방을 폭로하다'는 불법 촬영물-성범죄가 젠더 이슈로 바뀌면서 본질이 흐려졌다고 지적합니다.
박효실 기자는 2016년 정준영 몰카 촬영 의혹을 보도한 후 피해 여성이 고소를 취하하자 온갖 악성 댓글과 비난 문자와 전화를 받았습니다. 박 기자는 이로 인한 스트레스로 두 차례의 유산을 겪기도 했습니다.
강경윤 기자는 "보도 이후 이름 앞에 '좌파 페미' 등의 별명이 자연스럽게 붙었다"면서 "사건 이후 3년 동안 계속 괴롭혔다"라고 털어놓았습니다.
해당 다큐에서는 인기 케이팝 그룹 멤버라는 명성이 엄청난 권력이 될 수 있다는 현실도 씁쓸함을 안겼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이 사건이 당시 한국에서 젠더 문제로 확장된 부분도 언급했습니다. 한 누리꾼은 댓글에서 “여성을 구하기 위한 행동을 하면 페미라고 불리며 마녀사냥의 타깃이 되는 한국의 모습이 잘 드러난다”는 감상평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솜방망이처벌과 변하지 않는 현실
버닝썬 사건의 핵심 인물인 승리는 상습도박, 성매매, 성매매알선 등의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확정받고 지난해 2월 출소했습니다. 이어서 술에 취한 여성을 집단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정 씨는 징역 5년, 최종훈씨는 징역 2년 6개월을 확정받았습니다.
정 씨는 지난 3월 만기 출소했고, 최 씨는 2021년 11월 만기 출소했습니다.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서 ‘경찰청장’으로 불리며 승리와 유착한 혐의로 기소된 윤 총경은 자본시장법 위반과 증거인멸 교사 혐의 가운데 일부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대법원에서 벌금 2000만 원이 확정됐습니다.
하지만 승리 일행의 구속은 사건의 끝이 아니었습니다. 버닝썬 직원들은 강남 클럽은 변한 게 없다고 증언합니다. 그들은 당시 버닝썬에서 있었던 일들이 다른 클럽에서 그대로 일어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피해 여성은 “가해자도 평생 죄책감을 느끼며 살았으면 좋겠다”라고 했지만 아쉽게도 그 바람도 이뤄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지난 1월 승리가 캄보디아의 한 행사장에서 또다시 빅뱅 이름을 앞세워 많은 사람을 열광하게 만드는 영상이 공개됐습니다. 정준영은 지난 3월 만기 출소했고, 15년간 불법촬영을 포함한 성범죄는 11배 증가했습니다.
BBC 월드 서비스는 탐사보도팀 'BBC Eye'가 제작한 새 다큐멘터리 '버닝썬:K팝 스타들의 비밀 대화방을 폭로하다'가 오는 6월부터 BBC 뉴스 TV 채널에서 시리즈로 방영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오늘은 현재 BBC다큐로 이슈가 되고 있는 지난 19년 우리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버닝썬 사건에 대해서 알아보았는데요. 요즘 들어 왜 이렇게 무거운 소식만 들려오는지 모르겠습니다. 예전 탈주범 지강헌이 외쳤던 '유전무죄 무전유죄' 라는 말이 생각나게 만드는 소식들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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